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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기장

일본어능력시험 1급 합격, 그 후에 찾아온 '회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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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점수가 특출나게 일어를 잘하는 수준이 되는것도 아니고, 명색이 일본어 전공이니 안따면 오히려 더

이상한 자격증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일본어를 처음 배운것이 무려 10년 전 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면서 일본어의 장벽이야 그 당시 게이머 대부분에게 공통되는 사항이였겠고, 6학년 때에 처음

붙잡은 RPG였던 FF6을 하면서 카타카나 읽기를 거의 마스터해 버렸었다. 공략집에 있는 마법을 게임에서

써보면서 익혀지는 것이 촉음과 한글의 ㅇ받침을 쓰는 법까지 알아서 깨친 것이다.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 때 나는 내가 외국어에 꽤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_-;;

 중학교 1학년이 되어 38만원씩이나 하는 직장인 대상 일어학원 10개월 코스를 끊고 다니기 시작해서 히

라가나와 기본적인 문법까지 익혔다. 딱 그 시점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나 이외에 다 어른인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었고, 무엇보다 그때는 게임만 주구장창 했다. 게임을

하는데 일어때문에 가장 큰 압박을 받으면서, 일어를 배워볼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공부를 안 했던

것이다. 결국 세달 정도 다니고 때려쳤다.(비싼 교재만 아직도 집에 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당시에 2급을 따는 친구들을 보며 이때를 얼마나 후회했었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때 역시 기회였다. 고2후반이 되자마자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어졌고 다시 일본어

는 제2외국어 공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그 과정에서 3급이 조금 안되는 실력만 갖추게 됐고 이래

서야 평생 일본어를 마스터하지 못할 꺼 같아서 전공을 일어로 택했다.

 당연하지만 대학교에서는 역시 고등학교 때 남들 이상으로 해 두지 않은 것을 후회, 게다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통제하지 못해 그나마 2급조차도 못 따고 그대로 군대를 갔다.

 누구나 그렇듯이 군대에서는 밖에서는 없었던 온갖 의욕이 살아났고, 더구나 내가 있던 부대는 인트라넷 

되는 PC조차 없는 열악한 곳이였기 때문에 차라리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상병 3개월부터 2급 공부를

해서 전역 후 2급을 땄다.

 복학한 올해에는 과장을 안 보태고 1학년때의 10배정도는 공부를 했고(1학년과 2학년 과정의 수준차가 엄청

나서이기도 하지만) 빡센 2학기때 시간을 쪼개서 1급 공부를 따로 좀 하긴 했는데 결국엔 에라이~식으로

가긴 했지만 그래도 1년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 일본어라서인지 어떻게 붙게 됐다.

 

 생각해 보면 정말 실력이 늘었던 것은 그나마 시간을 쪼개서 제2외국어로 공부한 고3때, 그리고 일과 끝나고

정비시간 한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군대 시절이였던 것 같다. 나머지 시간엔 대체 뭘 했었는지..

 이글루스에서 포스팅하는 여러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게임을 하다가, 애니를 보다가, 만화책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보니 저절로...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어 왔지만 내가 저중에 안 했던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위

의 사람들처럼 정말 열정을 갖고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올해 2학년 전공으로 중급 일본어를 배우면서도 회화에는 역시나 한계를 느끼고, 어학이란 것 자체에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찾아왔던 수많은 기회들에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10년 전 출발점에서는 내가 앞서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정말 수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해 간 느낌이랄까? 그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도 정말 오래 전인데 말이다.

 

 뭐 이런 아쉬움들을 토로하면서 1급 합격증을 보면 참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10년만에 갖게 된

1급 자격증은 나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발판이라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대단한 것일수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많이 축하받고 싶다.

 

 

 

 

 담배도 안피는데 왠지 한대 태우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