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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관계의 단절과 회복

by 일본맛탕 2009. 7. 10.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가 있어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옛 방명록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해가 갈수록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아리송할 뿐이지만
그간 어리숙한 감정과 미숙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참 불필요한 상처를 주고 살았다 싶다.
뒤돌아 생각하면 정말 안 그래도 됐는데, 아니 안 그랬어야 됐는데...

작년 여름쯤에 어딘가에다가 '전엔 힘들면 다 놓아버리고 껍질 속으로 숨기 바빴는데 이제부턴 맺어 놓은 소중한 인연을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가는 법을 배워야겠다.'라고 써 놓고는, 그 이후에도 난 별로 발전한 게 없는 듯해서 잠시 속상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나와 마음이 맞고 말이 통하며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흔치 않은 사람들이 몇몇 있었는데, 아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방법으로 관계를 단절해 버려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게 된. 상대방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나도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왜 그런 선택지를 굳이 택해야만 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정말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조금만 더 성숙해질걸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난다.
이렇게 단절된 관계를 후회하기만 하던 사람 중에 과거엔 첫사랑도 있었는데, 첫사랑이라고 해 봐야 고등학교 때 잠깐 좋아했던 사람이고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사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이상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공유할 추억도, 커다란 마음도 없었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던 걸 보면 분명 내가 납득할 수 없는 형태로 마지막을 맞았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그를 향한 나의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감히 관계를 개선시킬 엄두를 낼 수도 없었고.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너무 힘든 나머지 마지막에 되게 추한 꼴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나를 너무너무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사람은 날 증오할 거고 날 꼴보기도 싫어할 거라고.

그런데 7년 만에 우연찮게 다시 연락을 하게 된 그는 신기하게도(?)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조금 이야기를 해 보니 오히려 그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니 미안한 건 난데 왜 저쪽이 나에게 미안해하는 걸까 의아해하면서, 오래도록 풀리지 않은 숙제가 조금씩 해결되는 듯한, 굉장히 요상하고도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약속을 하고는 막상 만나 보면 행여 어색하진 않을지, 도망치고 싶지는 않을지를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만나 보니 너무 즐겁고 편했다. 그동안 내가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는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추억 속의 첫사랑' 이상의 감정은 남아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지만...ㅎㅎ

서투르게 단절되어 버린 관계들 중, 지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그 중에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고, 차분하지 못했다고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아니면 혹여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은 있을까?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조금만 마음을 둥글게 먹고 살아야겠다.
다짐, 또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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