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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외향성과 내향성

by 일본맛탕 2010. 8. 18.

사람의 타고난 성향은 옳고 그름으로 구분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종종 특정 유형의 성향을 강요하거나, 반대되는 성향을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며 교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가 감정에 치우쳐 자주 우는 행위를 터부시하거나, 꿈만 꾸고 사는 몽상가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며 현실주의자들에게 지탄받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이와 더불어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건데, 이런 성향의 차이에 옳고 그름을 두는 것이 '외향형'과 '내향형'의 영역에까지 확장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비교적 뚜렷한 내향형이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혹여 생각하기 전에 말이 튀어나와 버리면 필요 이상으로 당황하는 타입. 이왕이면 말보다는 글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낯가림이 심해서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내가 평소에 말수가 적은 편이냐 하면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친지나 지인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내가 내향적인 인간이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릴 하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으레 하고 있는 의사소통 방법'을 내가 취하지 않으면 때때로 비난이 날아오는 상황이 생기고 만다.

실제로 나는 전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고 나면 조금의 유예 기간도 없이 즉각 대답을 해야 하는 전화는, 내게는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때로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중국집에 짬뽕 한 그릇을 시키는 주문 전화조차 걸기 싫어서 차라리 굶는 쪽을 택했고, 집에 걸려 오는 전화는 웬만하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 줬으면 했다. 지금도 휴대폰으로 매달 들어오는 무료 통화 300분 중 무려 270분 가량을 소비하지 못하고 허공에 날려 버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내게 문자 메시지는 생각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편리한 매체다. 내가 편한 시간에 보낼 수 있으면서 상대가 현재 진행 중인 행동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고, 답변 역시 숙고한 후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보낼 수 있으니 부담이 적다.

다시 앞의 전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일이 하나의 예의로 여겨지는 문화에서는 전화를 꺼리는 나의 행동이 '무례함'으로 비치게 된다. 이건 뭐 어떻게 이해를 해 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한번 그렇게 비치기 시작하면 상당히 난감하다. 누군가가 내게 "전화 좀 하고 살아라" 하며 일깨워 주더라도, 내가 앞으로 잘해 나갈 보장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게는 그저 박정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릴 뿐이고.

난 단지 외향적인 사람과는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이나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꾸만 그들의 소통 방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 기준까지 잘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정말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 싶어서, 요즘은 조금 심란하기도 하고 그렇다. 애초에 뭐가 옳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조금 다른 얘기를 해 보자. 남자친구가 없었던 기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칠 듯한 횟수의 소개팅을 몰아서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첫 번째와 마지막 소개팅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애프터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단순히 내가 매력이 없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선자의 말을 들어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상대 남성 왈, 내가 너무 말이 없어서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며, 연락을 해도 가망이 없지 않겠냐는 거였다. 나는 기필코 상대방 앞에서 싫은 티를 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인상을 풍겼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상당히 놀랐다. 단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말을 하는 게 어려웠고, 적절한 대답을 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으며, 내가 한 말들이 과연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판단하기가 힘들었을 뿐인데.

언젠가 친한 선배(男)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소개팅 나갔는데 맞은편에 너 같은 애가 앉아 있으면 무서울 것 같다던 말. 안 그래도 긴장해서 입은 텁텁 마르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는데, 앞에 앉아 있는 너는 웃지도 않고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것 같다고...

학교를 나와 수 년째 사회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딱히 외향성이 길러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지금 누군가와 소개팅을 하더라도(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마 별반 다르지 않겠지. 그런데 궁금하다. 짐작컨대 이런 나 같은 유형이 결코 적지는 않을 텐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소수로 보이는 까닭은, 다들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인 걸까? 힘들어도, 다소 불편해도, 다 참고 견디고 있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나도 더 노력해야지. 가만히 앉아서 내가 받아들여지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하지만 그만큼 내향성이 인정되는 분위기도 수반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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