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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육아일기

세 돌 전후의 기록

꿈토끼양 2017.04.07 03:10

이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글을 남긴 것이 작년 10월이었고(그것도 내가 아니었지만), 육아일기는 작년 6월에서 멈춰 있었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한번 글 쓰는 걸 멈추니 다시 시작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육아일기를 멈춘 건 아이의 사생활과 안전이 우려되어서였다. 나야 뭐 그냥 개인 기록 정도로 남기고 있지만, 어느 유명 블로거님이 블로그 글을 악의적으로 편집당해 피해를 입고는 아이들 얼굴 들어간 게시물들을 죄다 걸어잠가 놓으시게 된 걸 보니 나도 덜컥 겁이 났었다. 그래도 옛날 글들을 한 번씩 찾아보면 좋으니까 틈틈이 라이프로그를 남기고는 싶은데, 글을 쓰는 방법을 바꿔 볼까 하다가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 버리고 말았네. 사실 너무 바빠서 일기 같은 걸 쓸 여유가 없기도 했고... 접근성 좋은 SNS는 종종 했지만.


그리고 (블로그에 글로 쓰기에는 참 뜬금없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도쿄에 있다. 이제 온 지 2달 반 정도 되었다. 한국에서 살던 걸 모두 처분하고 아예 이주. 지금은 내가 보호자의 입장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이미 한 번 와서 살아 봐서인지, 모든 게 처음이라 경이로웠던 유학 시절과는 또 다르다는 걸 매일 느끼는 중이다.


각설하고,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뭐라도 써 둬야겠다 싶어서 옛날 사진들을 정리해 봤다. 실은 이것을 쓰기 전에 일본 정착기 같은 것을 먼저 쓴 다음에 육아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인터넷 설치 지연과 티스토리 해외 로그인 제한 같은 것이 겹쳐서 초반에는 쓰고 싶어도 쓰지 못했고;; 이제 와서 그러자니 마음의 부담이 더해져서... 일단 세 돌 전후(30개월~37개월)의 사진과 기록들부터. 거의 SNS에 썼던 것들을 옮겨 오는 수준이지만; 일단 남겨둔다. 시간 순 정리.



작년엔 내가 피아노를 열심히 쳐서인지 아이도 열심히 쳤다. 쳤다고 하긴 애매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음계를 알려주니 곧잘 익히는 게 신기했다. 부디 피아노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나서 나중에 엄마랑 연주회 투어도 다니고 그랬음 좋겠다. 내가 무심코 펼쳐 둔 악보에서 음표를 가리키며 "엄마, 이게 도예요?"라고 물어본 게 지나고 보니 놀라웠다. (사실 가리킨 건 도가 아니고 파였지만ㅋ) 그 속에 소리가 있다는 걸 안 걸까? 내가 늘 보고 치니까 그런 건가...



동네 도서관에 어린이 코너가 있어서 데려갔는데, 책에는 관심이 없고 서가의 숫자를 따라 쓰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마 이맘때쯤 즐겨 하던 토도수학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아~ 작년 여름에 정말 많이 했지. 아빠랑 같이 DDR. 저기 나오는 노래들은 불러주면 아직도 반응한다. 하루는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서 "저기 어머님... 새싹이한테 집에서 뭐 하고 노냐고 물어보니까 디디알을 한다면서 스텝을 밟는데요, 제가 아는 그 디디알이 맞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셨었지.



소래포구 가서 분수도 보고 실컷 놀고 조개찜도 먹었다. 이때만 해도 생선구이를 잘 안 먹었던 시기라(사실 지금도 잘은 안 먹지만) 막상 아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김가루에 밥을 비벼주기만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먹기 전에 어시장을 들렀는데, 개불이 있길래 아이한테 "이게 뭐게?" 했더니 "당근!"이라고 대답했다 ㅋㅋ



30개월.

아... 맞다. 이런 일도 있었지. 태어나서 첫 응급실행. 십 년 감수한 날이었다.

웬만해선 열이 잘 안 오르는 아이인데, 열감기가 일주일째 지속되고 그중 39도의 고열이 3일째가 되자, 다니던 동네 소아과 선생님께서 소견서를 써 주며 큰 병원으로 가 보라셨다. 이미 접수가 끝난 시간이라 응급실로. 피검사까지 했는데 다행히 정상이었고, 다음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만 더 버틸걸 그랬나? 그래도 열이 나면 덜컥 겁이 나서.



깨가 쏟아지는구나~ 늘 함께 어울려 다니던 어여쁜 여자친구. 한국에 있을 때 이 언니(친구 엄마)를 만난 건 축복이었다. 언니를 못 만났다면 나는 맨날 방구석 폐인으로 살았을 거야 흑흑흑... 덕분에 재밌는 곳도 많이 놀러 다니고 애들끼리도 자주 어울리고 그랬었지.



비가 그치고 나면 동네 놀이터의 미끄럼틀에 구정물이 남았는지를 꼭 검사하고 다녔다. 저때는 그냥 일상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또 감회가 새롭네...



여기는 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상상나라라는 실내 놀이터. 얘보다 좀 큰 애들이 가도 괜찮을 정도로 시설이 엄청 크다. 보통은 사람이 무지무지 많지만 시간을 잘 맞추면 그럭저럭 놀다 올 수 있다.


근데 조금 골치가 아팠던 게, 저렇게 물총처럼 생긴 게 몇 개 없는데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은 많아서 자리가 잘 비질 않고, 아이는 계속 하고 싶다고 칭얼댄다는 거.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멘붕이 좀 온다. 원래 내 성격 자체가 그런 상황에서 남한테 양보해 달라 부탁하지 못하는 타입이기도 한데, 애를 위해서는 좀 오래 노는 것 같은 애 뒤에 가서 한 번만 해 보게 해 달라고 해야 하나... "다 같이 노는 거니까 친구가 끝나면 하자?" 하고 달래 봐도, 앞 친구가 빨리 끝내 주지도 않거니와 끝냈다 해도 그 틈에 다른 친구가 와서 잽싸게 차지하기 일쑤라. 거기서 우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고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건지... 이 주제를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는 건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고민 중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좀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달까... 만약 엄마가 나 같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요즘엔 좀 하게 되었다.



사진만 봐도 더워 보이네 ㅎㅎ 한참 젓가락질에 빠졌을 때 플레이도우로 면발을 뽑아 놓고 저걸 저렇게 집고 놀았다. 다만 이 아이는 반찬을 잘 먹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에 실전(밥상머리 앞)에서 젓가락 훈련을 시킬 기회가 잘 없고... 그냥 저러다 흐지부지하게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이 시기쯤(32개월)엔 말은 통하지만 말의 속뜻 같은 걸 파악하지 못할 때라, 이런 대화가 오가곤 했다.


나: 너 여기 앉아서 밥 먹으란 말을 엄마가 몇 번 했어!

얼라: 네 번!!

나: 너 대체 언제까지 밥 먹을 거야!

얼라: 내일!!!!


매우 당당했지... 으음......

가, 가만? 다 알고 한 소린가...?



여전히 엄마의 살이 그렇게나 좋은가 보다... 여름이 되면 어찌 피할 방도가 없어진다 -.- 앉아 있기만 해도 다가와서 부비부비.

"왜 자꾸 얼굴을 부비는데?" 물으니 "엄마 다리가 시원해서!"라지만... 내 다리나 팔이 시원하지 않을 때도 열심히 부빈다. ㅎㅎ



평소에 놀이터를 가면 타라는 놀이기구는 안 타고 이렇게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꼬마 철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었지.



스킨십 대마왕. 하다 하다 이제 길을 걸을 때도 내 다리를 끌어안고 가시겠다고... 귀엽지만 떨어져!



아빠랑 옛날 우리 집 레트로 전용 TV로 함께 게임. 사실 저 TV는 내가 자취할 때 쓰던 건데...ㅎㅎ 고전 게임을 돌리기엔 저것만 한 게 없다며 지금도 아쉬워하는 남편이다.



어느 날 방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들어가 봤더니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계셨다 ㅎㅎ 저 왼쪽에 있는 머리가 보라색인 누나(아테나)는 아직도 좋아한다. 그나저나 두릅님이 앉아 계신 저 자리는 내가 늘 일하던 자리였지. 좀 지저분하지만 음 뭐... 도저히 치우고 살 여유가 없었다고 해 두자.



12월생 친구들과 많이도 어울려 놀았다. 여기는 롯데월드. 겁쟁이 김새싹은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데(큰 소리가 나는 게 무섭다고 한다) 중간에 있었던 농구공 던지는 기계는 참 좋아했다. 이때는 그... 이름이 뭐더라... 롯데월드 안에 있는 작은 키즈카페 같은? 곳에 가서 한참을 놀았다.



34개월.

어느 날 늦은 저녁에 피아노를 치고 싶대서 디피 볼륨을 낮추고 헤드셋을 씌워줬다. 지난 여름에 알려준 '도'의 위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손가락 바꿔가며 건반을 하나씩 누르는 법을 알려주니 서툴지만 열심히 따라해서 정말 기특했다. 그 이후로 피아노를 친 적이 없지 싶은데, 아직 기억하려나?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도 치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내일 치자고 거절한 게 떠올라서 또 가슴이 시큰시큰해진다.



이건... 아이가 마리오 월드 배경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길래 옆에 있던 남편한테 "얘는 8비트 음악이 싫은가봐" 했더니 그는 "월드는 16비트야!!"라며 정색했던 어떤 주말...



그리고 두둥... 대망의 11월. 세 돌을 1달 남겼던 그때. 우리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하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던 그때. 막판 스퍼트를 내느라 일을 잔뜩 받아서 스케줄을 다 짜 놨는데, 새싹님의 갑작스러운 폐렴 판정... 그래도 다행히 동네 소아과 선생님이 숨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을 일찍 눈치 채고 주시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처음부터 마이코플라즈마 약을 썼는데, 한 2~3일 써도 듣지 않는 걸 보니 이건 입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바로 소견서를 써 주셨던 것. 아니나 다를까 마이코플라즈마는 음성. 원인은 RS 바이러스였다. 그래도 초기에 잡은 덕에 많이 고생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어쨌든 아이가 입원까지 하는 걸 보는 건 힘들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와 주셔서 엄마랑 교대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사실 낮에는 거의 엄마가 케어해 주셔서 내가 애 보느라 고생한 건 없지만... 밤에는 여전히 내가 없으면 아이가 잠을 못 자서 저녁쯤 바톤 터치를 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보느라(잠을 자긴 했지만 틈틈이 열도 재고 가끔 시트에 토하거나 쉬야를 실수하거나 할 때가 있어서...) 정말 이 시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거의 다 나아서 다음 날 퇴원하기로 했을 때, 갑자기 그날 새벽에 먹은 걸 죄다 토하고 물만 먹어도 토하는 증세가 나타나서 입원을 연장하게 되었다. 일단 물을 포함한 모든 것을 금식하게 됐는데, 밤중에 일어나서 목 마르다고 물 달라고 애원하는 아이를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얼마나 어른스럽게 잘 참는지, 휠체어 타고 병동을 두 바퀴 돌고 나면 빨대로 3번 마실 수 있게 해 주겠다 하니 정말 두 바퀴를 돌 때까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잘 참았다. 약속대로 물을 주면 정말 젖 찾는 아기처럼 허겁지겁 마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러고 보니 호흡기 치료를 하는 도중에 나한테 "엄마,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하고 묻길래 대답을 한참 고민했었네...



아빠가 전대물을 주입시킨 바람에 한동안 나한테 맨날 파워레인저를 그려 달라고 난리였다. 이맘때 우리 집 알람은 조인전대 제트맨이었지...-.- 오프닝만 들으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눈을 뽁 뜨던 기적...



큰 소리가 싫다면서 오락실은 또 좋아한다. 뭐지...



"아빠! 저기 뉴건담이 있어!!" << 직접 한 말



같은 아파트 살던 12월생 친구. (늘 나오던 그 친구 맞습니다 ㅋ) 우리가 이사 온 후에도 맨날 102동 앞에 서서 새싹이를 찾았다고. 요즘도 찾으려나...ㅎㅎ 보고 싶구나. 흑흑.



오른쪽 양말은 태교여행으로 나가사키에 갔을 때 사 왔던 신생아용 양말. 처음엔 저 양말이 딱 맞았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난생 처음 와 본 공항. 아빠랑 같이 창밖으로 보이는 비행기들을 한참 동안 구경했던 2017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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