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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육아일기

28개월, 아기와 어린이 사이

꿈토끼양 2016.04.26 15:06

이번 달엔 초에 일기를 하나 쓰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때를 넘길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써 놓는 자식 관찰기.



그때도 썼지만 이제 이 아이를 '아기'라고 칭하기는 좀 낯설어졌고, 그렇다고 아직 '어린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작으니 그 사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애매하지만 귀여운 시기. 편하고 즐겁다.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수월해지다니. 이제 의사소통은 원활히 되는데 그렇다고 얘랑 내가 잡담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다양한 어미를 구사하고, 완전히 정리된 문장으로 길게 얘기할 수도 있게 됐다. "아빠가 칼국수 먹고 싶대?", "이건 내가 뺀 것 같아요.", "엄마도 장난감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어." 하는 식으로 뉘앙스가 달라지는 어미를 그때그때 바꿔 가며 사용한다. 물론 아직 삑사리도 많지만 ^.^ (들으면 너무나 재밌다!) 왼쪽, 오른쪽 같은 개념어도 곧잘 쓴다. 문제는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는 거지만... "나는 오른쪽에 앉을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왼쪽에 앉는다거나.


참, 주변에서 외국어 안 가르치냐는 말을 은근히 많이 듣는다. 가깝게는 친정아빠도 늘 저 말씀이다. 이왕 엄마가 하니까 애한테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주면 좋지 않겠냐고 하시는데... 으음, 잘 모르겠다. 그게 정말 좋을까 하는 의구심도 사실 있고, 또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자신이 없기도 하다. 모든 교육이 그러하겠지만 언어 역시 가르치는 사람의 에너지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작업이므로...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꾸준히'가 사실 제일 어렵지 않을까. 게다가 난 네이티브도 아닌걸. 소리 나는 책 몇 권을 장난감처럼 사 주니 듣고 따라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것도 본인이 재밌으니까 하는 거겠지. 외국어는 필요하면 언제든 하게 되니까 지금 그런 것들은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고, 일단은 모국어가 탄탄해지고 그와 더불어 생각도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 그게 훨씬 필요할 것 같다.





근데 이렇게 말이 늘면서 남의 행동에 참견도 엄청 심해졌다. 갑자기 길을 가던 모르는 형아한테 "뛰면 넘어져! 천천히 가야 해!" 하질 않나. 엄마한테 들은 '세상의 법도'를 모든 인간에게 적용하려 하는 듯하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어디 잠깐 멈추기만 하면 신호등이 빨간 불이냐고 묻고, 좌회전 신호 받아서 꺾으면 왜 빨간 불인데도 안 멈추고 가냐고 참견을 한다. "직진은 멈춰야 하지만 좌회전일 땐 보는 신호가 달라서 그래. 저기 화살표 보이지? 저게 뜨면 왼쪽으로 가는 거야." 이렇게 한참을 설명했는데, 처음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가 요새는 아는 척 정도는 한다. 듣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하겠지.



사...사진은 ㅋㅋ 자기도 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멋진 새싹이'가 되었으니 엄마도 어서 '멋진 엄마'가 되라고 참견하는 모습. 얘야, 이건 모자가 안 달린 옷이야... 안 보는 틈을 타서 살짝 내리면 쏜살같이 뛰어와서 다시 가오나시를 만들고는 도망갔다. 어허헝...


또 요즘 들어 느낀 건데, 무조건 안 된다는 부정의 말보다는 아이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함께 가게 같은 곳에 들어가서도, "여기 있는 거 만지면 안 돼." 하고 말하는 것보다는 "여기 있는 것들은 눈으로만 보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아직 만지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잠재적 만질 사람'으로 취급하면 아이는 괜한 호기심과 심통에 반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눈으로만 보되, 정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손가락 한 개만 펴고 그것을 가리키라'고 지시하니 정말 그대로 따라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본인도 수긍 가능한 행동을 규칙으로 지정해 주는 것. 앞으로 다른 상황에서도,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대신 뭔가 타협점을 제시해서 아이와 협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말 안 되는 행동은 단호하게 부정해야겠지만.





이렇게 새싹이는 말이나 사물 인지가 좀 빠른 편이지만, 신체 발달은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니었다. 뒤집기나 배밀이 같은 건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걸음마는 오히려 느렸다. 걷기 시작한 게 14개월 중반이었으니. 하지만 늦게 걸어서인지 넘어지지도 않고 잘 걸었다. 타고난 성격과도 맞물려서 어딘가로 돌진하거나 마구 뛰어가거나 하는 일도 잘 없었고. 아직도 그렇게 조심히 걷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넘어지지 않는 새싹님이 최근에 사건을 하나 터뜨렸다. 사촌 누나랑 형아가 놀러 온 어느 주말, 신이 나서 뛰다가 보도블록에서 꽈당 넘어져 버린 것. 넘어지면서 바닥에 입을 박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피투성이였다. 입속에 한가득 피가 고여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머릿속은 공황 상태.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옆에 육아 유경험자인 고모네 가족이 계셨던 덕에, 고모부가 지혈도 해 주시고 이빨이 흔들리지 않는지 체크도 해 주셨다. 많이 아팠을 텐데도 안아주니까 생각보다 일찍 울음을 그치는 새싹. "깜짝 놀랐지? 많이 아팠지? 괜찮아." 하고 토닥토닥하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내가 너무 빨리 가서 그래요. 이제 엄마 손 잡고 갈 거야."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니 일단 치아와 잇몸은 괜찮은 것 같고 입술의 상처도 꿰맬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소염항생제 처방만 해 주셨다. 그리고 당분간은 딱딱한 음식을 먹이지 말라셨다. 도저히 어린이집을 보낼 수가 없어서 그날 하루는 스케줄을 미루고 집에서 나랑 놀았다. "오늘은 어린이집 안 가도 돼요? 엄마하고 노는 거예요?" 하며 너무나 좋아해서 그걸 보니 또 마음이 아프고. 잘 놀다가도 불현듯 아픔이 밀려오는지, 품에 꼭 안으니까 내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엄마는 여기 안 아파? 나는 입이 아파요." 하는데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다면 좋았을 텐데...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입술의 상처 자국은 엄청 컸다. 뭘 먹일 때마다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그래도 어린아이의 재생력은 정말 뛰어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지금은 거의 다 나았으니. 입이 괜찮아지기 시작했을 때,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무심코 "이제 입 괜찮네? 뽀뽀할 수 있겠다." 하고 말했더니 당장 얼굴을 대고 뽀뽀를 시작해서 엄마는 또 심쿵... 으윽 >.<





그런데, 내가 보기에 새싹이는 신체를 활발하게 쓰려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남자애들 키우는 부모는 애 잡으러 다니느라 이미 목소리부터 달라진다는데... 얘는 그렇지도 않고 그냥 차분하고 얌전하다. 성향도 성향이지만 머리가 발달하는 것만큼 몸이 안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겁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말로도 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이, 그러니까 뭣보다 몸이 받쳐 주지 않아서(=운동 신경이 없어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부딪쳐 보겠다는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어디 놀러 가서도 신체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를 거부하는 걸 보면 괜히 미안함이 앞선다. 혹시나 날 닮아서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미끄럼틀도 이제서야 혼자 똑바로 내려온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내가 손을 잡아줘야 하거나, 아니면 배를 깔고 거꾸로 내려오곤 했다. (그렇게 내려오는 게 덜 무서운가 보다.)



동네 트램펄린 키즈카페에서도 올라가서 뛰고 놀 생각은 않고 늘 앉아서 소꿉놀이나 블록쌓기만 하더니... 요새는 재미가 붙어서 겨우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년에 길바닥에서 쓰레기만 보면 주워서 날 가져다주던 아이답게 여기서도 트램펄린 위에 이물질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부터 줍느라 난리지만.


며칠 전 병원에 갔다가 새로 키랑 몸무게를 잴 일이 있어 재 봤더니 88센티에 12.4킬로였다. 역시나 28개월 남아 치고는 약간 작고 날씬한 편. 밥은 제법 많이 먹는 편인데(대신 간식을 잘 안 먹음) 도통 살이 안 찐다. 아직 고기 맛도 잘 몰라서 대놓고 고기를 주면 기겁하기 때문에 적당히 밥이랑 숨겨서 억지로 먹여야 하고. 휴우... 언제가 되면 스스로 골고루 잘 먹어 주려나.



요새 건강 챙기느라 온 식구가 아침마다 녹즙을 받아먹고 있다. 새싹님도 어린이용 녹즙 하나. 일반 주스랑은 다르게 좀 쓴맛도 있고 단맛도 훨씬 덜해서 과연 먹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아주 잘 먹는다. 아침에 먹는 녹즙 외에 가끔 그냥 착즙 채소주스를 시키거나 집에서 내릴 때도 있는데(밀싹주스나 케일주스, 당근주스 같은 거) 그런 것도 잘 먹는다. 전엔 웬 녹용을 그렇게나 잘 먹더니... 여전히 알 수 없는 입맛이다. 어쨌든 녹즙을 잘 먹어주니까 좋긴 하지만.





28개월에 드디어 터닝메카드 데뷔를 하셨다. 첫 터닝메카드는 내가 물통 사러 간 사이에 아빠랑 골랐는데, 아빠 왈 장난감 코너에서 수많은 장난감을 보면서도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지도 않고 차분히 설명해주니 제일 원하는 걸로 딱 하나만 골랐다고. 집에 와서 포장을 뜯어주니 스스로 변신까지 척척이다. 벌써 이런 걸 이렇게 갖고 노나 싶어 복잡하고 오묘한 마음...



발음도 잘 안 돼서 '텀밈메카드'라고 하지만, 너무나 좋아해서 하나 더 사 줬다. 장난감 가게에 진열된 터닝메카드들을 보자마자 배에서 나오는 우렁찬 외침으로 "우~와!"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저 날은 외출한 아빠와 밖에서 만나기 위해 나랑 둘이서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 1시간 내내 터닝메카드(나백작) 하나를 가지고 이리 놀고 저리 놀고... 이 얘기를 외가집에다 했더니 당장 더 사 주라는 불호령(?)이 떨어져서 지금은 더 늘어났지만 ㅋ



집에 있는 과일이랑 야채도 갖고 와서 먹여 주고... 아끼는 장난감들한텐 꼭 저렇게 음식을 차려 준다.


터닝메카드 중엔 자동차 변신이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어서, 못하는 건 나한테 가지고 온다. 근데 가만 살펴보니 방법을 몰라서 못한다기보다는 손이 작아서 고정을 못 시키고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새싹이는 손이 작아서 힘든 거야. 엄마는 손이 크니까 지금은 엄마가 해 줄게. 하지만 나중에는 새싹이도 잘하게 될 거야." 하며 변신을 도와줬더니, "그럼 나중에 손이 커질 거예요?" 하고 되묻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려운 조립을 한 번 완성시키고는, "벌써 손이 커졌어요?" 하고 또 묻는다. 와하하.



그리고 여전히 잘 갖고 노는 플레이도우... 한번 하면 부스러기들이 온 바닥에 떨어져서 옷도 갈아입고 청소도 다시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여러 색을 섞어서 마블 무늬를 낸 다음 글자 틀을 찍으니 예쁜 글자가 만들어졌다.



항상 숫자랑 알파벳만 찍고 놀더니 드디어 심미적인 것에 눈을 뜬 듯하다. 모양틀에 여러 색을 섞은 예쁜 사과를 찍어놨길래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뒀다. 근데 자꾸 '어두운' 것을 '깜깜하다'라고 표현해서 '어두운 분홍색'을 '깜깜한 분홍색'이라고...



하지만 내가 더 잘 만들었지롱. 후후.


그러나 잘 갖고 놀다가도 마지막엔 모든 색을 합쳐서는 들이밀며 "똥이다~" 한다는 것이 함정 ㅠㅠ;





새싹이는 아빠를 닮은 눈매를 제외하면 정말 모든 것이 엄마(나) 판박이다. 성격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도 희한한 것까지 나를 꼭 닮았다. 왼쪽만 들어가는 보조개 하며, 약간 O자 모양으로 특이하게 휜 다리 하며, 손가락 마디 사이에 난 솜털까지. 그래서인지 나의 안 좋은 부분을 닮은 것을 보면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것에 대해 괜한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감기로 엄청 고생했는데, 자주 가는 동네 의사 선생님 왈 혼자 있는 애 치고는 자주 아픈 편인 것 같고, 특히나 기관지 쪽이 좀 약한 것 같다고 하셨다. 자꾸 이렇게 숨소리가 안 좋으면 만 4세 정도 되어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 보라신다. 내가 어릴 때 천식이 있었다고 하니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고. 안 그래도 요새 미세먼지네 황사네 불안 요소들이 많은데, 타고난 체질까지 나를 닮아 좋지 않다고 하니 신경이 좀 쓰였다.



진작에 샀었어야 했나 싶은 공기청정기. 이번 기회에 질러버렸다. 아직 며칠 안 써 봐서 눈에 띄는 신체 변화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환기한다고 창문을 열거나 외출에서 돌아오거나 하면 갑자기 웅~ 하면서 주황, 빨강으로 색깔이 바뀌는 걸 보면 우리가 지금껏 이런 공기를 마셔 왔구나 싶어 새삼 놀랍다. 삶의 질이 갑자기 향상된 느낌도 들면서, 램프가 파랑(좋음)으로 떨어지면 왠지 이거 이대로 청소를 안 해도 상관없는 게 아닐까 싶은 안이한 마음이 드는 것이 가장 큰 효과. 아무튼 이왕 산 거 관리 잘 해서 오래오래 써야겠다.


그나저나 이 어린아이를 장차 어떤 인간으로 키워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앞에서 주구장창 나를 닮았다는 말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 해도, 한 사람의 성격을 지레 단정짓고 부모가 보는 대로 규정하려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건 아이가 내 복제품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나와 닮은 구석은 많지만, 내가 느낀 한계는 나보다 잘 극복해 줬으면 좋겠고, 그럼에도 본인이 생각하는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말고 자부심을 갖고 잘 받아들여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일매일 자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주는데, 어느 날은 "엄마는 나 얼만큼 사랑해? 조금만 사랑해?" 하고 물었다. 왜 하필 조금만 사랑하냐고 물은 걸까.


하지만 우린 서로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있다는 걸 잘 안다. 내가 가끔 허리가 아프다고 할 때면 새싹이는 다가와서 허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한다. "새싹이가 엄마 허리 토닥토닥해주면 엄마 안 아파?" 하고. 모두 알고 있다. 그 눈빛이, 그 손짓이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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