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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생각상자

빨래와 행복

by 일본맛탕 2014. 10. 10.


행복하다.


아침에 빨래를 널면서 생각했다. 언젠가는 햇볕 좋은 날에 베란다에 달린 커다란 빨래봉에 기분 좋게 빨래를 너는 게 소원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계약해 버린 신축 빌라는 좁아서 짐이 다 들어가지도 않고, 부실공사로 가스렌지 후드에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안방의 벽면은 곰팡이로 도배되고, 급기야 좁디좁은 화장실 벽면 타일까지 무너지는 바람에 행여 타일 조각에 몸을 다칠세라 만삭의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샤워를 해야 했다.


세탁기를 돌리는 날이면 그 좁았던 거실은 빨래의 차지가 되었다. 가끔 볕이 좋은 날이면 기분을 내겠다며 세탁실로 나가는 문ㅡ실외와 이어져 있었던ㅡ을 열어젖혀 놓고 문고리 사이사이로 옷걸이를 걸어서 조금이나마 시원스럽게 빨래를 널어보려고 했더랬지. 그러다 집 안으로 벌레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면서 남편의 귀가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고.


그때 바랐던 게 지금 같은 집에 살면서 지금처럼 빨래를 널어 보는 거였다.

그 집에선 새싹이도 생겼고, 일도 생겼고, 우연찮게 많은 인생 경험을 하게 됐으니 지금에 와서는 감사한 마음이지만...


어쨌든 행복하다. ㅎㅎ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