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생각상자

나 어릴적 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11.

 네이트온 접속하니 2007년 7월 11일에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쓴 글 알림이 왔다. 블로그에 썼었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하지만 반추해 보고자 옮겨 본다. 결론은 프로그램을 배웠으면....이긴 한데 6년이 지난 지금(정확히는 근 1년 사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자기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연예인, 프로게이머가 장래희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 아이들은 꿈을 잃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도 대통령이나 장군보다는 가수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나는 단상에 올라가 나의 꿈을 설파했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야기는 장황했고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눈을 또렷히 뜬채 집중했고 나는 연설을 계속했다. 확실히 그 때의 나는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은 내 이야기에 시선은 빼앗겼을 망정 수긍은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내가 당당하게 설파했던 그 꿈은 '오락실 주인'이였기 때문이였다. 사실 진짜 꿈은 '게임점 주인' 이였지만 아이들이 이해를 못할까봐 일반화시킨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장황한 연설이 끝난 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하고싶은 게임을 미치도록 할 수 있는데 그게 왜 싫지?'

 당시의 내 생활은 그야말로 '게임 라이프' 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기 전에 게임을 하고,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게임월드를 보고, 집에 돌아올 때는 오락실에 반드시 들렀으며 토요일 오후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게임판을 한바탕 벌이곤 했다. 일요일은 짜파게티 먹고 게임했다. -ㅅ-;

 슈퍼패미컴을 갖고 있던 나는 팩 1개를 가지고 한달에 한번 교환하는 것은 나에겐 고문이였다. 게임잡지에는 매달 새로운 게임이 쏟아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은 고작 철지난 게임 한개였으니..더구나 네오지오 이식 게임을 할 때의 그 허전함이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였다. 게임점에 가서 네오지오를 봤을때의 충격과 팩 가격을 알았을 때의 좌절 또한 컸다.

 그런 욕구불만을 채워준 것이 바로 게임잡지였다. 매달 어머니가 사주신 게임잡지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보니 또래 아이들이 류를 하얀 도복이라 부르고 달심을 고무인간이라고 부를 때 내 머릿속엔 베가와 춘리, 가일의 스토리가 있었고, 울프 팽이나 메탈 블랙같이 마이너한 게임의 제목이나 캡콤이나 코나미, 세가같은 유명한 제작사는 물론 마이크로 캐빈, 공화당 스튜디오같은 내가 손대본 적도 없는 게임의 제작사들까지 줄줄 꿰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중1때는 자기 꿈을 쓰는 일기를 써 가지 않아서 갱지 5장을 장래희망에 쓰라는 벌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갱지를 받은 후 30분만에 다 써버렸고,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일본에는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많다. 그 회사는 캡콤, 코나미, 남코......(2페이지).....그 회사들이 만든 명작 게임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소드월드 RPG.....(2페이지)....그런데 이런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전부 일본이다. 고에몽을 해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모습도 나타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멋진 게임이 없다. 나는 언젠가 일본의 콧대를 눌러줄 게임을 꼭 만들겠다.'

 물론 제출하고 난 뒤 불려가서 엄청 맞았지만, 어느샌가 내 꿈은 바다이야기 기계 관리자에서 게임 개발자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꿈이였다. 나는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BASIC과 한글, LOTUS까지 배우고 워드 3급 준비를 하면서도 컴퓨터학원에서 배우는 지식과 내가 즐기는 게임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컴퓨터 학원도 그만두고, 3학년이 되면서는 게임기도 팔고, 난 그냥 보통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고싶은 일에 대해서 약간의 가이드라인만 있었더라도 처음부터 확고하게 꿈을 쫓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항상 가지게 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증명했듯이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

'사는 이야기 > 생각상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조자는 리뷰어일까 아닐까?  (0) 2014.06.13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  (5) 2013.08.17
번역을 하다 보면  (4) 2013.01.31
lookback  (0) 2013.01.28
이해  (1) 20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