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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

[책] 역사: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23.

  출근준비를 하면서 아침뉴스를 보다가 남경태씨의 신간 소식과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개념어 사전이 참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서 2년만의 신간이라는 것에서부터 관심이 생겼고,
동양 문명은 실패했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을 펴 보니 아니나다를까 저자 서문부터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
하는 서양 문명의 대안이 동양 문명'이라는 최후의 보루조차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의식주
의 대부분은 물론 문화까지 서양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공감할 일이
지만, 정신적인 동양(혹은 우리나라) 문명이 물질적인 서양 문명보다 고상하다며 자기암시
를 거는 거울속의 우리 자신을 지적당하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동양문
명의 실패'등의 정의를 내렸다가는 매국노로 몰리기 쉽상 아닌가? 여하튼 저자는 그런 관점
을 가지고 동양, 서양,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풀어나간다.

 2부 '성장'에서 제시하는 근거는 꽤나 설득력이 있다. 진 제국에 이어 한 제국이 성립하면서
'중화사상'이 확립된 이후 동양의 역사는 제정일치의 통일의 역사로, 강력한 중심에서 원형
제국에서 동심원적으로 퍼져나간다. 한 제국이 만리장성 안쪽의 세계를 중화세계, 그 외곽
지역을 오랑캐로 단정짓고 이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로마 제국은 지중해라는 지역적
특징 때문에 고리형 제국을 건설하고 이후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분열의 역사가 계속되었
으며, 분열에 의한 다양성이 서양 문명이 앞서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논리다.

 3부 '만남과 섞임'에서는 동양식 제국(대부분 중국)의 반복된 실패와 몰락, 서양사에서 대항해
시대의 팽창기와 절대주의 시기를 거쳐 의회 민주주의가 등장하고, 파시즘이라는 시련을 거쳐 
현대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이 내용을 읽으면서, 다분히 결과론적인 논
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자가 사용하는 '역사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역사가 이루어지던 당시에 사람들이 어떤 동기
를 가지고 행동했는가와 관계없이, 무의식적으로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논리가 묘하게 동양의 역사는 태생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서양
의 역사는 미국의 시민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밖에 없다는 뉘앙스를 풍겨서 다분히 결과론적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가 그 정도로 필연적인 것이라면 현재의 시사에서도 나중에 이어질 역사의
흐름을 읽어낼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역사적 무의식'은 본래의 시대에서 훨씬 지나서야
파악된다는 논리에 막힌다. 그렇지 않은 역사(결과)를 근거로 대기 전에는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이다.

 어떤 이론(관점)을 형성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직관적으로 형성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단단해진 경우일 수도 있고, 역으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 사이에서 발견
한 법칙일 수도 있다. 동/서양사의 저술과 많은 번역서를 낸 저자의 생각이니 후자일 것으로 믿
지만, 군데군데에서 전자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 있다.

 4부 '차이'에서는 3부까지 서술한 내용을 근거로, 서양 중심의 현대문명이 성립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최근의 시사문제까지 설명하고 있다. 3부까지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의 시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의 범주를 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나라 문화를 비판
적 시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서양 우월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마지막의 '애국
심과 통일'부분은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했다. 

 나는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책을 좋아한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자기계발서 말고)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관점이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낫다. 또한,
아무리 객관적으로 정리하더라도, 모든 책에는 저자의 관점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저자의 생각에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반박하면서 걸러내는 것은 나에게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중2 사회시간(세계사)이 너무 재미없어서 매일 딴짓만 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때문에 세계
사를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역사에 일천한 나에게는 쉽고 재미있게 통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역사를 깊게 들어가고는 싶은데 얇고 넓은 지식조차 부족하다고 여기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했던 이야기 또 하는 저자 특유의 서술은 여전하다. 내가 글을 쓰면서 항상 빠지는 함정이라 더 잘
보인다고나 할까? 다음 책부터는 퇴고하면서 좀 줄여보시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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