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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문

[책] 사랑의 기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3.


사랑은 기술인가?

사랑의 이론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사랑의 실천

  목차를 먼저 정리해놓고 보니 무슨 온라인 서점 리뷰같지만앞으로 할 이야기들을 위해 먼저
올려놓는다.

 어렸을 때 집의 책장에 이 책이 꽂혀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하지만 책을 들춰봤자 의미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호기심이 왕성할 즈음에는 이 책이 무슨 성 지식이
라도 나와있는 책인가 해서 다시한번 들춰보았는데, 결과는 대 실망이었다. 야한 내용 따위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명저라는 이야기를 이따금 들었고, 얇은 분량에 혹한 적도 있지만,
계속 인연이 닿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몇 달 전 저자 서문에 해당하는 사랑은 기술인
가?를 읽었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를 지적하면서 사랑을 하는 능력, 곧 '사랑의 기술'이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사람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오
류, 사랑을 하는 행위보다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오류, 그리고
사랑을 시작할 때의 환상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는데,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그
리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 기간이 길었다면) 이 부분을 읽을 때 아마도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이 사람과는 싸울 일도 힘들 일도 없도록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곤 했다. 사랑에 실패하고 나서야 그것은 환상
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경험담에서 그런 현실을 다시한번 뼈
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다시 시작할 때는 어느새 망각하게 된다. 경험담만으로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고 밀접하게 느끼며
일체라고 느낄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하고 격앙된 경험 가운데
하나다....(중략)..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p.17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한가? 내용 중에서..

 마지막 한 마디는 신랄하기 그지없지만, 경험담 이상의 것을 가져다 주었고, 언젠가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에서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집증적
사랑의 예를 알려주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 예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또 한번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들 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쪽은 '사랑의 기술'을 근본 가정으로 두고 있
고, 그 기술이 부족한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앞서 소개한 내용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시간
이 지난 후의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에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앞의 내용으로 잠시 돌아와서, '사랑의 이론'에서는 앞서 정의한 '분리 상태의 불안감을 떨
처내려는 합일에의 욕구'라는 사랑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사랑이 무언
가를 주는, 능동적 행위로 정의하며, 그 밖에도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의 요소를 열거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깊게 다가온 것은 존경이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니까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
지만 그건 성인군자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성인군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환상이 깨진 후에는 주기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맹목적인 희생과 집착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줄 때에만 사랑이 성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본주의였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또는
그녀)와 일체감을 느끼지만 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지, 내가 이용할 대상
으로서 나에게 필요한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않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p.47 사랑의 이론 내용 중에서..

 존경은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나 역시 나 자신의 분리상태를 자기
애로서 극복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사랑하는 사람에 맞추어 나 자신을 바꾸는 경향이
짙었다. 그 결과는 하루라도 더 보자고 칭얼대는 나와 사랑을 시작할 때의 아이덴티티는 온
데간데 없는, 이도저도 아니게 된 나였다.

 그 때문에 한동안 힘들어했고,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던 즈음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
게 되서 기쁘고, 고맙다.

  '사랑의 실천'에서는 먼저 헤겔의 이론을 통해 어떤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어떤
기술을 습득하려면 훈련, 정신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이라는 요소가 실행되어야만 한다는 것
이다. 이 요소들의 실행에 대해서 신앙,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서 적용하는 예시를 소개하는데,
'사랑의 기술'의 실용과는 조금 동떨어지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라면 이
부분만 분리해 내도 될 만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위의 과정을 객관성과 이성, 합리적 신앙, 생산성, 용기, 활동 등의 개념에 적용하는 것으로
사랑의 실용을 설명한다. 하지만 각각의 개념이 사랑 이외의 내용을 넘나들며, 개인이 아닌
사회적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내 이해력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다 읽고도 아직 제대로 이해
하지 못했고, 조용한 곳에서 차분하게 이 부분을 다시 읽어야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와의 모순에서는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보이지만, 그 이전의 전제를 이해
하지 못한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얇은 책 얕보다가 큰코 다쳤다.)

 지식과 살아갈 방향을 얻었지만, 저자도 말하듯이 실천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실천 부분을
이해했더라도 그 사실은 같을 것이다. 책에서의 이론이 전부 통용될 리 없다. 다만 그 동안의
경험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각을 얻었을 뿐이다.

 50주년 기념판에는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조수였던 라이너 풍크가 쓴 저자의 삶이 수록되어
있다. 실천 부분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면 이 부분까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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